1. 공무원, 군인 근무평정 최고의 문구, "다시 한번 함께 근무하고 싶은 인재임"
공무원, 군인의 진급심사에 가장 많이 참고하는 자료는 근무평정(이하 평정)이다. 평정은 인사관리의 기준이 된다. 1년에 2회 실시하고 상급자 2인 이상이 평가하며 한때는 360도 다면평가도 포함됐다.
관공서와 군대 조직은 주로 평정 결과를 보고 해당 조직원을 향후 어떻게 활용(보직 또는 진급)할지 판단한다. 또한 평정은 능률증진의 기초가 된다. 평정 결과는 일정한 조건 하에 본인에게 공개되는데 이를 통해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조치하란 취지다.
평정을 작성하는 상급자가 가장 고민하는 대목은 종합평가다. 피평정자의 실적, 능력, 태도, 성품, 장래성을 200자 내외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관공서와 군대 평정에는 샘플이 있다. 인사를 총괄하는 부서에서 제시한 참고 예시, 평정에 정통한 자가 뿌린 예문, 오래 전부터 통용된 상용구 등이 그것이다.
평정 종합평가의 샘플, 예문, 상용구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함께 근무하고 싶은 인재임"이다. 통상 종합평가의 마지막 문장으로 쓰는데 피평정자의 능력, 성품, 장래성을 직접 체험한 내가 보장한다는 뜻으로 최고의 평가다.
2. 다시 한번 함께 일하고 싶은 부하란 어떤 부하일까
가. 성실한 부하
첫째, 성실한 부하다
성실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바닥부터 시작해 기획 분야 업무를 22년 한 A는 이렇게 말했다. "시킨 거, 해야 할 일 잘하는 건 성실이 아니라 그냥 기본이지. 나는 다가올 상황에 미리 대비해놓는 부하랄까? 그런 스타일이 성실한 부하라고 생각해. 관리직에 있다 보면 깜박깜박할 때가 있거든. 그럴 때 옆에서 다음 달 00사업 대비해서 해당 기간 휴가자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셔야 합니다, 이런 조언을 해주는 거, 그러니까 자기 일도 잘하면서 상급자가 중요한 결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플러스알파를 해야 성실하다는 말을 듣지."
A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성실하다는 건 말이야. 내 관점에서는 예측이 가능한 직원이야. 지금쯤 출근해서 오후에 있을 회의 보고서를 만들고 있겠지, 다음 달에 큰 프로그램이 있으니까 실무자를 모아놓고 주의사항을 전달했겠구나, 이렇게 예측이 가능해야 관리자가 시간표대로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있어."
나. 중간보고를 잘하는 부하
둘쨰, 중간보고를 잘하는 부하다.
20년간 공직 생활을 하다가 군의 고위 기관장으로 채용된 B씨는 중간보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중간보고에서 중요한 건 정직이에요. 일 잘될 땐 누구나 보고 잘하죠. 그런데 일이 틀어지면 제대로 보고를 안 한단 말이에요. 정직하지 않은 거죠. 이런 사람하고는 같이 일 오래 못해요."
오랫동안 해외 정책을 담당한 C는 이렇게 말했다. "중간보고를 잘 해야지. 시도 때도 없이 와서 미주알고주알 보고하는 놈은 빵점이야. 내가 알아야 할 내용이 있고 몰라도 될 내용이 있을 거 아냐. 중요한 보고는 새벽에 집에 쳐들어와서라도 보고해야지. 그리고 자기가 알아서 처리할 일은 보고할 필요 없어. 보고 안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그럼 자기가 책임지는 거야."
다. 펑크 안 내는 부하
셋째, 펑크(구멍) 안 내는 부하다.
20년을 야전에서 보내고 학교 기관에서 7년째 교관 임무를 수행 중인 E가 말했다. "아흔아홉 번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대역죄인 되는 게 군대야. 잘하는 거 하나 없어도 좋다 이거야. 그냥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만 일하고, 대신 절대 펑크 안 내는 놈이 좋아. 부하로 데리고 있기에는 구멍 안 내는 놈이 최고야."
E는 이렇게 덧붙였다. "일? 그건 내가 조금 더 하면 돼. 경험도 지식도 내가 더 많잖아. 그러니까 부하가 능력이 좀 떨어지면 잡다한 일, 매일 체크해야 하는 일 같은 거 시키면 된단 말이야. 그런데 그걸 또 구멍 내는 놈들이 있어. 그럼 그 다음부턴 어떻게 돼? 부하를 못 믿으니까 내가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작하는 거야. 문제가 없어서 넘어갔으면 아무 일 없는데 지휘관이 확인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없던 일이 하나 둘 생긴다고. 그러면 그때부터 서로 피곤해지는 거지. 과부하가 걸리는 거야. 구멍이란 게 이렇게 무서운 거라구. 그러니까 일 좀 잘 못 해도 구멍 안 내는 놈이 좋아."
교리개발 관련 업무를 하는 F는 이렇게 말했다. "업무 하다 보면 예하 부대 현황을 종합할 일이 많아. 그러면 표를 만들어서 쫙 뿌려. 빨리빨리 채워 보내라, 이거잖아. 그러면 양식이 어떻든, 자기 부대에 그런 현황이 있든 없든 일단 채워서 보내줘야 한단 말이야. 일단 그 표를 꽉 채워야 일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거든."
"그런데 꼭 이런 애들이 있어. 보내준 표에 안 맞게 채워서 보내. 어디 한 군데를 빼먹기도 하고, 어떤 애들은 줄이나 칸을 만들어서 거기에 현황을 넣어. 그러면 그건 못 써. 바빠 죽겠는데 보내 달라는 거 다음 날에도 안 주는 애들이 있어. 그러면 그 일은 펑크 나는 거지. 그러면 그래. 너 언젠가 두고 보자, 이렇게 되는 거야."
준비가 덜 됐어도 뭐 보내 달라고 하면 재깍재깍 보내주는 사람, 해 달라는 대로 일단 응신해주는 사람이 함께 일하기 좋고 그런 사람에겐 나중에 어떻게라도 보답을 한다고 F는 말했다.
3. 두 고위직의 의견
관료, 장교 생활을 30년 이상 한 두 고위직 출신에게 인터뷰 결과를 설명한 후 의견 개진을 부탁했다. 두 사람은 다소 상반된 대답을 했다.
G는 이렇게 말했다. "저건 관점에 따라 달라. 무난히 진급하고 싶은 관리자는 펑크 안 내는 부하가 최고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 하지만 조직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저렇게 말할 수 없지. 만약에 부하가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봐. 일 못 해도 구멍만 안 내는 사람이 되어라,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부모는 없지.
G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사회는 부하를 자식처럼 대하라고 강조하지. 그렇다면 구멍을 좀 내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부하를 더 아끼고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그 구멍 때문에 내가 좀 괴로워도 말이야.
H는 "어지간히 뛰어난 상급자가 아니면 우수한 부하를 밑에 두는 게 부담스럽지. 우리 사회는 더 심해. 성실하고 보고 잘하고 구멍 안 내는 부하라는 게 결국 뭐야? 그냥 편하고 만만한 부하가 좋다는 거야. 사고 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라, 이 얘기랑 똑같은 거란 말이야. 평시 군대 조직이 오랫동안 실전을 치르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관리형 조직이 되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H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편하고 만만한 부하가 나도 좋아. 조직에서 나와 보니까 더 알겠더라고. 같이 근무할 때 별 잘하는 것 없어도 성실했던 부하, 말 잘 듣고 수더분했던 부하들이 사회에 나와도 계속 연락을 해. 잘난 놈들은 제 앞길 찾아가느라고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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